[나무작가 이흥렬의 시선] 나무를 버림으로써 버려진 것은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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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작가 이흥렬의 시선] 나무를 버림으로써 버려진 것은 인간이었다
  • 이흥렬
  • 승인 2021.04.2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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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니스앤컬처뉴스] 첫 폭낭(팽나무)은 바람이 심한 동복리의 폭낭이었다.

비록 세찬 바람에 밀려 한쪽으로 자라 편향수가 되었으나 나약하지 않고 오히려 역동적이었다. 마치, 육지로부터 온갖 천대와 수탈을 당한 제주였지만, 이제는 누구나 가고 싶고 살고 싶은 섬으로 우뚝 솟은 그런 제주의 모습이었다. 그 후로 매년 두세 번씩 제주로 내려와 폭낭을 기록하였다. 육지에 사람들과 애환을 같이 한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면 제주는 폭낭이 있었다.

동네 어귀에 우뚝 솟아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친구가 된 인간 폭낭, 중산간 우물가에 홀로 서서 들짐승들의 지킴이가 된 자연 폭낭, 4.3의 학살을 겹겹이 기록한 역사 폭낭, 마침내 신이 된 신목 폭낭...

촬영을 시작하기 전, 가만히 나무에 기대어 앉으면 마치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내가 본 나무는 모두 아름다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었고 그 모습 또한 저마다 경이로웠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슬프게, 언제나 인간에게 따스하게 또는 무겁게, 그리고 신비하게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조명의 색과 방법, 프레임을 결정하였다. 난 다만 그들과 한바탕 즐겁게 놀 뿐이었다.

촬영하다 보니 슬픈 나무를 만드는 것, 행복한 나무를 만드는 것, 아픈 나무를 만드는 것 모두 인간임을 알겠다. 나무는 오직 하나인데 인간에 의해 의미가 덧씌워졌다.

인간에 의해 추앙받고, 인간에 의해 버려졌으나 나무는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하였다.

나무를 버림으로써 버려진 것은 결국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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