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필요한 ‘사’자 직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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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필요한 ‘사’자 직업은
  • 황상열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0.0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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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pixabay]

[웰니스앤컬처뉴스 황상열 칼럼니스트] 나이가 들면서 참으로 불편한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얼마전에 ‘손절’했다. 관계를 끊었다는 의미다. 불혹의 나이가 넘었는데도 인간관계가 여전히 서투르다. 질질 끌려다니면서 내 마음이 불편했다면 진작에 끊어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 친구가 잘 나가는 ‘사’자 직업을 가지고 있다보니 계속 뭔가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과 미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나도 속물이다.

​그 친구는 성형외과 의사다. 2000년대 초반 내가 운영했던 다음 카페 모임에서 알게된 친구다. 서울의 유명한 의대를 다녔는데, 집도 부자였다. 늘 외제차를 끌고 다녔다. 시원시원하고 솔직한 성격에 술자리에서 몇 번 이야기하다 친해져서 얼마전까지 친분을 유지했다. 대학 졸업반 때 만나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30 시절에는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았다.

나이가 들면서 격차가 심해지고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지면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상류층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차별했다. 자기와 수준이 맞지 않는다 며 연락도 점차 줄어들었다. 좀 서운했지만, 그래도 오랜 기간동안 친하게 지내왔기에 그럴수도 있다고 이해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접촉이 힘들어지고, 꽤 오랫동안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자가격리 중이라 오랜만에 친구의 안부도 물어볼 겸 전화했다. 한참 통화음이 들린 후 받았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어. 웬일이냐? 너한테는 이제 할 말 없는데.”

“아니. 본지도 오래되서 안부차 전화했어.”

“무슨 안부. 암튼 없는 것들은 안부차 전화했다고 하고, 뭐 필요하니까 전화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 그래? 그냥 소식이 궁금해서 전화한 것 뿐인데.”

“책이 안 팔리냐? 얼마나 사줄까?”

요새 강남에서 잘 나가는 성형외사라고 하니까 눈에 뵈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분명히 선을 넘었다.

“그게 할 소리야? 내가 거지냐? 내가 책 사달라고 언제 부탁한 적 있냐? 갑자기 왜그래?”

“그냥 끊어라. 왜 혼자 흥분하고 난리냐. 없는 것들은 이래서 문제야.”

“알았다. 잘 지내라.”

20년 가까이 된 우정이 전화 한통으로 끝이 났다. 의사라고 자기 밑에는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의사가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어린시절 부모님들은 무조건 박사나 의사, 기술사, 변호사 등 ‘사’자 직업을 가져야 성공한다고 믿었다. 그것을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명령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자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 없는 것보다 백배 낫다. 하지만 성향과 가진 재능이 다른데 모든 사람이 ‘사’자 직업을 가질 수 없다. 안되는 사람들에게 사회가 정해놓은 잣대로 평가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자 직업을 가졌다고 다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사’자도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박사, 의사, 기술사, 변호사 등이 아니라 ‘밥사, 술사, 감사’ 등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사진출처=pixabay]

점점 삭막해지는 사회에서 혼자서 아파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가까이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기꺼이 밥 한끼 사줄 수 있는 ‘밥사’가 되자. 같이 밥 먹으면서 그의 넋두리를 들어주자. 같이 아파하고 공감하며 위로해주자. 더 필요하다면 술도 사줄 수 있는 ‘술사’가 되는 것도 좋다.

​요새 나는 회사나 주변에서 힘들어하는 후배나 지인들이 있다면 기꺼이 시간을 내어 그들의 ‘밥사’, ‘술사’가 되어주고 있다. 그들과 함께 나의 고민도 같이 나누다 보면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도 많이 풀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과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있기에 ‘감사’를 표한다.

[사진출처=pixabay]

점점 코로나19가 줄어들지 않고 다시 확산일로에 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이 많이 힘들어한다고 전해진다. 또 많은 사람들이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세상이다. 이런 순간에 ‘밥사’, ‘술사’가 되어 나도 힘들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한번쯤은 도와주고 같이 공감하며 위로해 주면 어떨까?

 


[황상열 칼럼니스트]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매일 쓰는 남자 황상열 칼럼니스트이다. 그는 30대 중반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이후 지독한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져 인생의 큰 방황을 겪었다. 다시 살기 위해 독서와 글쓰기를 하면서 항상 남 탓만 하던 그 자신에게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과 글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를 모토로 독서와 글쓰기의 위대함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어 매일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아주 작은 성장의 힘], [하이바이 스피치], [지금 힘든 당신], [괜찮아! 힘들땐 울어도 돼] 외 7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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