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탈' 26종·200점을 책 한 권에 담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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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탈' 26종·200점을 책 한 권에 담아 펴냈다
  • 황상열 기자
  • 승인 2022.01.1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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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속극박물관, 민속과 예술 연구지 ‘서낭당’ 8집 ‘우리나라 탈’ 발간
[사진출처=한국민속극박물관]
[사진출처=한국민속극박물관]

[웰니스앤컬처뉴스 황상열 기자] 한국민속극박물관이 우리의 탈 26종 200점을 정리해 ‘우리나라 탈’을 발간했다.

'우리나라 탈'은 1996년 개관 이래 한국민속극박물관이 소장했던 우리 탈 26종(하회별신굿, 병산 탈, 본산대 탈, 고성 탈, 나무 방상씨 탈, 백제기악탈, 열두 띠 탈, 키 탈, 짚 방상씨 탈, 양주 별산대놀이, 남사당 덧뵈기, 통영 오광대, 고성 오광대, 강릉 관노 탈놀이, 북청 사자놀이, 봉산 탈춤, 동래 야류, 강령 탈춤, 처용 탈, 수영 야류, 송파 산대놀이, 은율 탈춤, 가산 오광대, 발탈, 진주 오광대, 김해 가락 오광대)에 대한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한국민속극박물관 심하용 관장은 할아버지인 탈 제작자 심이석(1912-2002), 아버지인 민속학자 심우성(1934-2018)이 평생에 걸쳐 만들고, 수집한 탈들을 사진작가 박옥수의 사진과 함께 책으로 엮었다. 심 관장은 “박물관의 내부 사정으로 대다수의 탈은 유실된 상태라 1970~80년대 실제 탈놀이에 쓰였던 이 탈들이 우리나라 탈의 흔적을 되찾는 데 참고서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책에는 나무 탈 작가였던 심이석의 ‘나무로 깎은 얼굴, 그 다양한 표정의 유산들’이란 탈 제작자 관점에서 바라본 탈의 도상 해설과 함께, 그가 복원한 우리나라 나무 탈 33점·백제기악탈 15점의 사진이 실렸다. 또 민속학자 심우성이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하며 수집한 국가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탈놀이와 탈들 사진과 함께 ‘탈은 왜 생겨났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그의 글이 실렸다.

현대 한국인에게 탈은 본디 기능을 잃어 골동품이 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탈은 전통 연극, 전통 무용 그리고 전래 의식 속에 전해져오고 있어 국가 무형 문화재로 지정·전승되고 있다.

심 관장은 “우리는 역사의 소산인 전통 탈에서 보게 되는 벌거벗은 자화상을 통해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고, 우리의 탈 유산과 주변 문화권의 탈 유산을 견줄 수 있다”며 “우리 문화권의 발자취를 살피며, 우리 문화의 독창성을 찾는 참고서로써 이 책의 발간은 주목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탈의 역사

탈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인류는 부족국가가 생기기 전부터 자연의 재앙으로부터의 두려움, 인생의 고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탈을 만들어왔던 것이다. 장승이나 솟대와 같은 것들도 탈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탈은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이다.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조개껍데기로 만든 탈이 출토되었으며, 강원도 양양에서는 흙으로 만든 토면이 발굴되었다. 이러한 탈들은 얼굴에 직접 착용했다기보다는 주술적인 용도나 장식품으로 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탈이라고 알려졌던 목심칠면은 최근 화살통의 일부였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얼굴에 쓰는 가면으로서의 탈은 한때 경주 노서리 호우총에서 발견된 탈 형태의 유물이 우리나라 최초의 탈로 알려졌었다. 1946년 이 유물이 발굴되자 학계에서는 목심칠면(木心漆面)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탈로 발표하고, 고대 신라의 신앙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이 50여 년 만에 화살을 넣는 통으로 밝혀졌다. 무덤에 1천 5백여 년간이나 묻혀 있었기에 형태가 일그러져서 이러한 착각이 빚어진 것이다(이로 인해 탈에 관한 모든 정보, 예를 들면 백과사전은 물론 각종 관련도서들의 내용을 수정해야 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사조(祭祀條)’에 나오는 최치원의 「향악잡영」 5수 중 월전과 대면, 속독, 산예가 그것이다. 여기에 실린 9세기 말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에 탈과 탈놀이가 성행하였으며, 처용무와 칼춤도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방상시 가면을 나례의식 때 사용했다고 전하며, 현존하는 탈 중 가장 오래된 하회탈도 고려 말의 유물인 점을 고려할 때 당시에 탈놀이가 꽤나 성행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팔관회 때에는 고려 개국공신들인 신숭겸과 김락을 추모하는 탈놀이를 개최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지방 곳곳마다 탈이 있었고, 탈놀이가 성행하였다. 산대놀이는 물론, 해서탈춤과 야류·오광대·서낭신제 등 명칭도 지방마다 다르게 발전하였다.

[자료출처=한국박물관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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