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를 영어로 즐길 때 일어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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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를 영어로 즐길 때 일어나는 일
  • 이미향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2.2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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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니스앤컬처뉴스 이미향 칼럼니스트] 영어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질문자: "영어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어요?"

답변: "영어를 왜 잘하고 싶으신데요?"

질문자1: "해외 여행 가서 영어가 안되니까 뭘 해볼 수가 없더라구요. ‘영어만 되면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텐데, 영어 공부 해 야지’ 하고 맘먹어도 자꾸 흐지부지 돼요."

질문자2: "영어 뉴스를 잘 알아듣고 싶어요. 학교 때 영어 공부는 좀 했는데 뉴스는 거의 안 들려요."

질문자3: "영어책을 읽고 싶은데 애들 책을 봐도 어렵더라고요."

자주 듣는 질문이다. 질문은 간단한데 대답은 한 마디로 나오지 않는다. 질문한 사람에 대한 탐색을 해야 그에게 맞는 답변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난 뭐든 재미있게 하면 좋겠다는 사람이다. 억지로 하는 공부는 재미도 없고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 영어를 어떤 목적으로 공부하든지 보통은 다음 두 가지가 있으면 영어의 실력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하나는 지속성이고, 다른 하나는 취미와 영어를 결합하는 것이다. 후자가 잘 되면 전자가 쉽게 따라온다. 전문가의 지속성을 이야기할 때 쉽게 끌어 쓰는 용어로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 어떤 일이든 1만 시간을 지속한다면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 1시간씩 30년을 하든, 하루 3시간씩 10년을 하면 대략 1만 시간이다. 아주 긴 시간이다. 영어도 잘 하고 싶다면 긴 호흡으로 해내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그런 각오가 아니라면 잘하자고 생각하지 말고 적당히 해서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잘 하려면 매일 영어를 들여다보는 일에 길들여져야 한다. 그런데 10년 이상 영어를 해야 한다면 내가 즐거워하는 일과 영어를 엮으면 훨씬 쉬워진다. 에너지를 내서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무언가를 하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
[사진출처=pixabay]

한 가지에 깊이 빠져드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영어를 가르쳤던 고등학생 태영이는 어찌된 영문인지 세계사만 좋아했다. 수학도 싫고 과학도 싫다고 했다. 세계사 이외의 모든 것에 거부감이 심했다. 시험 공부를 거의 포기하고 게임과 세계사만 좋아했다. 부모님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아들이 철이 들기만 기다리는 형국이 되었다. 처음 태영이를 만나 이런 저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중 주제가 세계사에 이르자 아이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태영이가 좋아하는 세계사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계속 질문을 하면서, 앞으로 영어로 된 세계사 책을 같이 읽어보면 어떨까 제안을 했다. 영어 해석은 내가 도와주지만 나는 세계사를 잘 모르므로 내게 세계사 수업을 하라고 했다. 태영이는 뜻밖에도 좋다고 했다. 수업 때마다 내게 세계사의 이것 저것 설명하느라 아이는 할 말이 많았고,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이의 태도는 점점 적극적으로 변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태영이는 갑자기 대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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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1세기는 유트브의 시대" 라고 말한다. 알고 싶은 어떤 주제도 유튜브는 알고 있다. 궁금하면 500원을 내지 않아도 즉석에서 보여준다. 그것도 무료로 말이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지식이 쏟아져 나온다. 호기심에 따라 '구독' 버튼을 누르면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따라 해당 주제를 끝없이 내 눈 앞에 제시 해 준다. 호기심 영역의 영상을 탐색하느라 취침 시간을 놓친 날이 무수하다. 나는 태영이와 유투브에서 세계사를 영어로 가르치는 채널을 몇 가지 찾아보았다. 그 중 태영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채널을 골라 '구독하기'와 '알림 설정'을 하게 했다. 주로 한글로 된 세계사를 듣던 태영이는 이제 영어로 그렇게도 좋아하는 세계사를 듣게 되었다. 이미 세계사 지식이 탄탄해 영어로 듣고 있지만 영어가 그리 장애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때론 영어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공부로 접근할 때는 보기 싫던 영어지만 너무나 좋아하는 세계사에서는 공부라는 의식이 전혀 없었다. 그런 식으로 몇 개월만 지나도 수능 영어의 듣기 영역은 이미 문제가 되지 않으며, 독해력이 필요한 수능 독해의 수준을 많이 따라갈 수 있다.

학습 사이트 중에서 'Khan Academy'를 추천해 주었다. 많은 학문 분야별로 수준 있는 강의를 영어로 해주는 빌게이츠가 추천하는 무료학습 사이트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은 그런 사이트 천지다. 태영이와 나는 그 곳에서 세계사 강의를 몇 번 들었다. 다 재미있다고 했다. 평소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익숙한 세계사 영역이므로 유추해서 추측하는 힘이 있었다. 어떤 설명은 자기의 견해와는 다르다며 비평을 하기도 했다.

아이와 전면적으로 만나 코칭하듯 영어 공부를 하기 때문에 1대1 수업을 즐긴다. 아이들의 타고난 관심사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아이마다 마음을 열고 들어보려면 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가지 분야에 열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관심은 놔두면 호기심이 되고, 호기심은 놔두면 열정이 된다. 아이들이 공부에 관심도 호기심도 열정도 없는 경우 질문을 하며 그 이유를 파고들다 보면 호기심이 없는 영역에 의무와 강요로 발을 디딘 사실에 이르게 된다. 야구를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다.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 열정이 생긴다. 하지만 공부가 아닌 야구는 어린 시절에 싹이 잘리는 경우가 많다. 수학 학원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야구에 대한 독서도 하고, Sammy Sosa에 대한 위인전도 읽고 영화도 보면서 아이의 집중력과 열정을 키워주면서 즐거움과 자신감을 갖게 한 뒤에 다른 영역으로 이어지도록 간다면 야구도 수학도 즐거운 영역 안에 남을 것인데 우리 교육에서는 모두가 같은 시기에 해야 할 공부가 정해져 있다. 잠재력의 싹이 싹뚝 잘려 나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수학도 야구처럼 재미있을 수 있는 학문이지만, 아이가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혹은 강요에 의해 매일 일상으로 파고든 수학은 아이에겐 호기심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포기하고 싶은 지겨움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아이가 관심있는 영역에 빠져들게 하고 영어라는 언어를 이용해 그 관심사를 넓어지게 만드는 교육 방식은 사실상 표준화되지 않는 1대1의 방식이기 때문에 사교육에서 채택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기분 좋아지는 영어 컨텐츠가 넘쳐 흐르는 세상에 8품사를 외우고, 분사 구문과 관계 대명사의 용법을 이해하느라 지친 아이들의 영어 공포증을 보면 하루 빨리 공교육 영어 수업이 이 풍부한 콘텐츠에 물꼬를 대주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영어는 내가 알고 싶은 영역으로 인도하는 도구의 역할만 하면 충분하다. 

한 가지 영역에서 자란 탐구심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다른 영역으로 파생되는 시기를 맞는다. 누군가 억지로 아이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하지만 않으면 이는 끝없이 다른 영역으로 이어지며 확장될 것이다. 시기는 각자 다르지만 말이다. 영어 자체가 실력의 중심에 서기 보다 좋아하는 영역의 정보가 영어로 된 게 많아서 보다 보니 영어가 되는 상태가 되면 영어는 더이상 공부가 아니어도 된다. 시간이 흐르면 그 아이는 당연히 영어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태영이와 함께 입시 정보 서적을 찾아보니 영어와 세계사 두 과목만 수능 시험을 잘 보면 갈 수 있는 대학이 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말을 듣고 태영이는 스스로 공부하려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고3에 만난 학생이라 대학의 수준을 끌어올릴 만한 충분한 시간은 없었지만 영어에 관해 잘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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