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를 탐구하는 우주적 시선, 키키 스미스의 아시아 첫 개인전 《키키 스미스 ― 자유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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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를 탐구하는 우주적 시선, 키키 스미스의 아시아 첫 개인전 《키키 스미스 ― 자유낙하》
  • 한은경 기자
  • 승인 2023.01.17 1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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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 2층 전시실
전시기간 2022.12.15 ~ 2023.03.12

[웰니스앤컬처뉴스 한은경 기자]  분절되고 파편화된 인체 표현과 더불어 생리혈, 땀, 눈물, 정액, 소변 등 신체 분비물과 배설물까지 가감없이 다루면서 1990년대 미국의 애브젝트 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로 설명되기도 하는 키키스미스의 개인전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3월 12일까지 진행된다. 

《키키 스미스 ― 자유낙하》는 신체에 대한 해체적인 표현으로 1980-1990년대 미국 현대미술사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온 키키 스미스의 아시아 첫 미술관 개인전이다. 

1994년에 제작된 작품 제목이기도 한 ‘자유낙하’는 스미스의 작품에 내재한 분출과 생동의 에너지를 의미하며, 여성 중심 서사를 넘어 범문화적인 초월 서사를 구사하는 작가의 지난 40여 년간의 방대한 작품활동을 한데 묶는 연결점으로 기능한다. 또한 파편화된 신체를 탐구하는 스미스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한편, 달이 지구를 맴도는 자유낙하 운동처럼 배회를 통해 매체와 개념을 확장해 온 작가의 수행적 태도를 동시에 담아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특징에 기초하여 조각, 판화, 사진, 드로잉, 태피스트리, 아티스트북 등 14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소개한다. 

키키 스미스가 예술에 입문하기 시작한 1980년대 미국은 에이즈, 임신중절 등을 둘러싼 이슈를 필두로 신체에 대한 인식이 두드러지는 시기였다. 이 당시 스미스는 아버지와 여동생의 죽음까지 차례로 겪으면서 생명의 취약함과 불완전함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배경은 해부학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사와 맞물리면서 스미스가 신체의 안과 밖을 집요하게 오가며 탐구하는 계기를 이루게 된다. 

불편한 육체를 드러내는 키키 스미스의 작업은 아브젝트 아트(Abject Art)로 설명된다. 아브젝트 아트는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철학적 개념인 아브젝트(Abject)와 이어져 아브젝트는 주체와 객체의 경계선에서 주체도 객체도 아닌 모호하고 복합적인 어떤 것으로 자신의 통일된 경계와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기존의 아브젝트를 밀어내고 거부해야 한다. 아브젝트 아트는 불편하고 비천한 것들을 작품의 소재나 재료로 사용하거나 자아와 타자의 경계, 신체와 정신의 이분법에 도전하고 사회 문화적으로 금기시되는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가리킨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동물, 자연, 우주 등 주제와 매체를 점차 확장하여 경계에 구분이 없는 비선형적 서사를 구사해오고 있다. 

키키 스미스는 자신이 신체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단순히 여성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부각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신체야말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형태이자 각자의 경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다층적 해석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전시는 작가의 초기작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작품에서 일관되게 발견되는 서사구조, 반복성, 에너지라는 요소를 기반으로, 서로 느슨하게 연결된 세 가지 주제인 ‘이야기의 조건: 너머의 내러티브’, ‘배회하는 자아’, ‘자유낙하: 생동하는 에너지’를 제안한다. 

스미스는 본인의 예술 활동을 일종의 ‘정원 거닐기’라 칭했다. 이는 여러 매체와 개념을 맴돌며 경계선 언저리에서 사유하는 배회의 움직임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소외되거나 보잘것없는, 혹은 아직 관심이 닿지 않은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경의의 메세지를 담은 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작업이다.  

1980~1990년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스미스는 “나는 여전히 자유낙하 중이다.”라고 말한다. 느리고 긴 호흡으로 주변의 ‘크고 작은 모든 생명’에 귀 기울이며 상생의 메시지를 던지는 스미스의 태도야말로 과잉, 범람, 초과와 같은 수식어가 익숙한 오늘날 다시 주목해야 할 가치일 것이다. 

스미스는 여성의 몸을 소재로 체액과 배설물 등 터부시되는 신체 분비물을 적나라하면서 그로테스크하게 다루었다. 몸의 모든 구멍에서 일제히 토하듯 쏟아내는 이 같은 형상은 억압된 내면의 폭발을 그려낸 것이다. 

그는 신체 미술을 하는 많은 다른 여성들과 달리 자서전적인 작업방식에서 탈피하였다. 중세 기도서와 인디언의 전통문화 등에서 영감을 얻는 그는 우리 신체로부터 나온 피와 눈물, 오줌과 젖 등을 무형의 종교적 신앙으로 대체하고 있다. 스미스는 인간의 몸을 연약한 임상 표본으로 제시함과 동시에 영혼을 담는 기관으로 보았으며 보다 더 신화적이고 초월적 힘을 가진 여성상을 향하고 있다. 신체에 대한 그녀의 작업은 우주적 세계관에 대한 탐구로 그 의미체계를 확장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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