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테라피, 소설가 오태규의 장편 소설 ‘친구 줄리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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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테라피, 소설가 오태규의 장편 소설 ‘친구 줄리앙’ 출간
  • 유지선 기자
  • 승인 2023.04.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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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규 소설가의 장편소설 ‘친구 줄리앙’의 표지
오태규 소설가의 장편소설 ‘친구 줄리앙’의 표지

아트테라피가 소설가 오태규의 장편 소설 ‘친구 줄리앙’을 출간했다.

이 소설은 이젠 이 세상을 떠나고 우리 곁에 없는 주연무(朱煙霧)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영어, 국어, 사회, 세 과목 교사 자격증을 독학으로 따낸 수재였다. 서울의 3대 단과학원이었던 정진학원, 한샘학원, 정일학원 중에서 정진학원을 설립한 1세대 원장이었다. 한샘학원도 정진학원에서 분가시켰으니 실질적으로 대형 학원을 두 곳이나 설립한 셈이다. 그는 노량진 학원가의 전설이 됐다. 20년 전 어느 날 아침, 홀로 관악산에 올라간 그가 돌연 심장마비로 급사한 것이다. 그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책 속으로

내가 학연이나 지연(地緣) 없이 서울에서 만난 유일한 친구였다. 내가 30대에 학원가에 몸을 담았을 때 매일같이 만나서 함께 생활했던 절친한 친구였다. 나는 기껏 영어 한 과목에 그쳤지만 주연무는 영어, 국어, 사회, 세 과목 교사 자격증을 독학으로 따낸 수재였다. 그는 서울의 3대 단과학원이었던 정진학원, 한샘학원, 정일학원 중에서 정진학원을 설립한 1세대 원장이었다. 한샘학원도 정진학원에서 분가시켰으니까 실질적으로 대형 학원을 두 곳이나 설립한 셈이다. 그는 노량진 학원가의 전설이 됐다.

그가 전설이 되어버린 이유는 간단했다. 20년 전 어느 날 아침, 홀로 관악산에 올라간 그가 돌연 변사체로 발견됐다. 심장마비로 급사한 것이다. 그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도 그를 회상할 땐 늘 행복했다.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그의 인상과 인품과 성격과 분위기를 극세필로 세세히 그려낼 수 있었다.

주연무는 한마디로 알쏭달쏭한 사람이었다. 체대가 작고 얼굴은 귀티가 나고 입술이 얇고 눈매가 매섭고 턱이 합죽하고, 인상은 잔잔하고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날카로웠고, 성격은 섬세하고 자상하고 인정이 많지만 녹록찮고 꼬장꼬장했다. 특히 두뇌가 명석하고 학구열이 뜨겁고 독서량이 엄청났다. 살랑대는 나뭇잎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곧잘 소리 없이 실실 웃다가도 이따금 껄껄대고 웃었다. 항상 뜻 모를 미소가 입가에 번져 있고 두 발꿈치를 모우고 고개를 숙여 깍듯이 인사했다. 예절바른 태도로 그렇듯 철저히 자신을 방어하다가도 곧잘 우렁찬 웅변조로 괴성을 내지르곤 했다. 정직하고 성실하지만 그의 도덕성과 정체성은 깊은 베일에 가려 있었고 그 내부는 크렘린 같았다. 그 이중성과 폐쇄성에 감춰진 그의 속내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도회풍으로 세련됐지만 때론 소탈하고 친근하기가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이 착한 아저씨가 노가다를 부릴 땐 가끔 코피가 터지도록 뺨을 후려쳤다.

그의 어록(語錄)도 심심찮게 떠올랐다. 주연무는 오랫동안 총각행세를 하고 살았지만 영락없이 결혼생활을 졸업한 사람처럼 말했다.

“결혼이란 필요할 때마다 서로를 속이는 예술이다. ‘결혼생활은 셋이면 유지할 수 있지만, 둘이면 깨지기 일쑤다.’ 정부(情夫)를 두고 눈치껏 외도하면 결혼이 유지되지만, 그렇잖음 금세 파경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재능을 타고났지만 예술에 재능을 투영한 적이 없었다. 그는 넌지시 바라보기만 했다.

“예술을 확실히 싫어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예술을 ‘합리적으로’ 좋아하려는 것이다. 참된 예술가는 주목을 받지 못한다. 예술은 대중의 호기심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냉소주의(cynicism)로 시종했다. 냉소주의자(cynic)는 모든 사물의 가치를 알고 있지만 정작 그 가치는 공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말을 그는 곧잘 뱉어냈다.

“남녀 사이에는 우정이 끼어들 수가 없다. 둘 사이에는 열정과 증오, 숭배와 사랑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정이 훨씬 비극적이다. 사랑보다 더 오래 지속되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뒷말을 하는 것도 나쁘지만 그보다 훨씬 나쁜 것은 내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외로운 섬이 돼 버렸고 실제로 생활력을 거의 잃어버린 채 천야만야 추락하고 말았다. 그와 함께 보냈던 청춘의 빛나는 나날이 추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 소설의 키워드는 폐쇄적인 이중생활을 하는 주인공의 야망과 출세와 몰락이다. 제목을 ‘친구 줄리앙’이라고 붙인 이유다. 작가는 실명으로 학원 이름이 나오고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누구인가를 대게 짐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소설 속의 이야기들은 꾸며낸 허구가 많다는 것을 밝혔다. 만약 누군가가 상처를 입게 될지라도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소설을 쓴 것은 그리움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세월의 제애(際涯)를 바라보며 나는 지금도 내 친구 줄리앙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소설 속에서나마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망외(望外)의 기쁨이 되겠다고 밝혔다.

저자는 두 가지 이야기를 꼭 덧붙이고 싶다고 전했다.

이 소설은 노량진 대학입시학원들의 산 역사다. 나는 1980연대를 전후해 전성기를 맞았던 노량진 대입학원가의 그 긴박하고 흥미진진했던 이면사(裏面史)를 생생하게 기록해 놓았다. 그 복판에 주연무와 내가 우뚝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 문교부 시행 영어교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 소설에서 거의 독학으로 내가 영어를 완전히 정복했던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했다. 영재(英才)들의 ‘효율적인 영어학습방법’을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사의 ‘영어학습지도 전범’(典範)도 상세히 기술해놨다. 영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꼭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필독서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많은 질정(叱正)을 바란다.

오태규(吳台圭) 프로필

전남 순천 출생이다. 조선대 법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재학 중 문교부 시행 영어교사 시험에 합격했다. 한창때 순천고, 순천대, 단국대 등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자적(自適)했지만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82년 단편 ‘한려수도’가 월간문학소설신인상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에서 크고 비범한 것을 캐내고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독특한 작품을 선보였다.

중단편소설집 ‘해동머리’(1983), ‘작은 불평의 천국’(1992), ‘물방울 하나의 기록’(2005), ‘종생기’(2008), 연작장편소설 ‘우시아로 가는 길’(2022), 장편소설 ‘친구 줄리앙’(2023), ‘광장의 눈’(2004), 수상록 ‘클럽방문기’(2021), ‘내가 버린 시대’(2010), ‘완벽한 구멍’(2018), ‘쾌적한 악몽’(1973), 전 20권의 일기체수상록 ‘아고니스트 당신’(2008~2019) 등을 발표했다.

오태규 작가의 작품이 주목받는 것은 작가의 개성인 문체, 언어에 서식하는 무한한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 ‘소설 문장의 전범’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론 추리소설 기법의 치밀한 완결성과 쉬르풍의 실험적이고 탐미적인 작품성이 금상첨화(錦上添花)라는 평가를 받았다.

소설가 오태규는 소설 ‘친구 줄리앙’의 출간과 동시에 일기체 수상록 ‘아고니스트 당신 2014’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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